요즘 집 앞에 있는 농구장보다는 도심 속에 있는 공원 내부에 배치되어 있는 농구장을 이용하고 있다.
나의 주거지는 회사에서 출퇴근 하기 편리하도록 공단 쪽에 있는데 그래서인지 사람도 없고 조용함을 넘어서 적막한 공원이었다.
그래도 넓은 코트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매일 적막한 공원에서 혼자 농구를 해서인지, 남들이 보기에는 단순한 사람들과의 사소한 소통이라던지 가끔은 아이들의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까지 그리워졌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말이다.
도심 속 공원의 농구장은 우리 집 앞의 전세 농구대와는 달랐다. 나 한 명으로 가득 채웠던 코트와는 달리 이 곳에서의 농구는 주인이 없었다. 모두가 주인이었다. 어린아이, 초등학생, 대학생, 어른들까지 모두가 어울려 농구를 즐겼다.
하루는 농구코트에 초등학생들 밖에 없었는데 혼자 하고 있는 나에게 달려와 "형 농구 좀 가르쳐 줘요", "같이 해요" 등 같이 하고 싶은 듯한 행실을 보였다. 얼떨결에 우리(나와 초등학생들)는 농구를 하게 되었고, 나 혼자 vs 초등학생 6명이 팀이 되어 게임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놀란 것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학생들이 패스를 잘하는 것과 나와는 달리 땀도 흘리지 않고 게임을 뛰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아마 나 혼자서 여섯 명을 상대해서였겠지만 말이다. 너무 힘들었다.
잠깐 쉬는 타임에 학생들은 나에게 달려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형 몇 살이에요?", "휴대폰 뭐예요?", "군대 다녀왔어요?" 등 기본적이고 대답하기 쉬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형 요즘 군대 많이 힘들어요?", "군대 안 가도 돼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하기 쉬웠던 질문이라는 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여기서 힘들다고 한다면 이 아이들이 군대에 가게 될 나이가 왔을 때 어떻게든 가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릴까? 그렇다고 반대로 대답한다면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정보들에 혼란이 오지 않을까?
아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처럼 사고의 깊이가 깊이 정착되어 있으면 대답해도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생각이 틀려지는 아직 순수하고 어린아이들이 내가 겪은 그대로의 경험을 말해준다면 많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한쪽 귀로 흘려들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겪어 보니 알겠더라. 어린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부모의 입장은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 사소한 언행들 모두 조심스럽고 중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아이들의 대답에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들이 군대를 가기 전까지 수많은 얘기들을 듣게 될 거야. 기왕 가는 거 남자답게 힘든 곳 다녀오자! 하는 소리도 있을 것이고, 군대 가서 죽으면 남의 자식인데 안 가는 게 최고야~ 하는 소리 등 다양한 대답들을 들으며 살아갈 것이란 말이지? 그럼 너희가 선택하면 돼. 그때까지 들어온 대답들을 정리해서 말이야.
참고로 형은 첫 번째 생각으로 군대를 갔어"
요즘 아이들은 정말 언어의 구사력이 뛰어난 것 같다. "에이 형~ 구라까지 마요~ 증거 있어요?"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여섯 명이 한 번에 덤비면 질 것 같은 덩치들이어서 포기해야만 했다.
대답하기 전에는 초등학생이니까, 어리니까 내가 조리 있게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의 대답은 내가 이 아이들보다 먼저 세상을 경험한 선배가 되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최대한 아이들이 경험을 통하여 얻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답했던 것일까.
아니면 전자든 후자든 나의 현재 심리가 대답에 녹아들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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